저번에 공개했다 닫아둔거 다시 공개

추우니까요~ 뭔가 이거 관련해서 흐지부지된 거 같아 그런것도 있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제나 그에게 주도권을 뺏긴 상태이다. 그게 싫지 않다는 게 요즘 하는 고민이다.


지역의 마피아와 대부호가 손잡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다만, 뒷골목에도 영향을 끼치던 가문이 갑자기 마피아와 결탁했다면 이 지역의 판도가 뒤집어질 수 있는 일이므로, 소식을 들은 거리의 사람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기 마련이었다. 어디서 총성이 들릴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인 상태가 계속되는 긴장감만이 감도는 거리.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마티노 패밀리의 보스 오소마츠와 맛츠 가문의 차남 카라우스의 회동은 엄중한 경계 속에 이루어져야 할 터였다.

"카라우스~ 오늘도 그거, 해 줄 거지?"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게 아닌 거 잘 알지 않은가, 보스."

"체엣. 차갑긴. 지금 일어나버릴까 보다."

"무슨 애도 아니고. 알았다. 일단 일 먼저 처리하면 하자고."

둘의 만남은 단둘이서, 꽤나 길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오소마츠의 지시로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돼있는 별채. 천장이 높고 널찍한 로비가 마련된 그곳에서 무엇이 이루어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알게 된 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둘만 있게 두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첫 만남부터 둘만 이야기를 나누기를 요청했다. 보스의 안위와 맛츠 가문의 대표로 온 차남의 안위를 걱정하는 다른 이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소마츠는 자신이 평소 혼자서 생활하고 있는 별채로 카라우스를 안내했다. 이미 정해졌다는 듯 마티노 패밀리와 맛츠 가문 간의 계약이 체결됐다. 그 이후로도 둘만의 만남이 이어졌다. 바깥의 빛을 모조리 가리는 암막커튼의 존재가 비밀스러운 두 사람의 일을 암시할 뿐. 둘은 한참 서류뭉치를 넘기며 이야기를 나누고는 악수를 나눴다.

"일은 끝~ 그러면…"

"이만 가보겠다."

"에에에? 일 먼저 처리하면 해주겠다며! 거짓말쟁이!"

"무슨 어린애처럼 떼를 쓰는가. 이런 녀석이 한 패밀리의 보스라니, 그런 패밀리에 몸을 의탁하게 되다니 여러모로 심란하기 그지없군."

"말 돌리지 말고, 해줘."

깊은 한숨과 함께 잠깐만이다, 대답하며 카라우스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드러난 살갗에 진 수많은 흉터는 대부호 가문의 일원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된 카라우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눈을 감았다. 까만 시야에 희미한 불빛. 이윽고 그 불빛은 명확한 원이 된다.

"으으으윽… 크르르르르…"

카라우스의 몸이 순식간에 털로 뒤덮이더니, 덩치가 커지고 늑대와 비슷한 괴물의 형태로 바뀌었다. 대부호 맛츠 가문이 감추고 있는 비밀이자 약점, 한편으로는 무기이기도 한 이 모습. 오소마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카라우스쪽으로 걸어갔고 카라우스는 마치 개처럼 오소마츠 앞에 엎드렸다. 오소마츠는 카라우스의 위에 거의 눕다시피 하고선 털을 쓰다듬어댄다.

"역시 사랑스럽다니까, 이 모습. 줄곧 이러고 있어 준다면 좋을 텐데."

"그런 소리 마라. 괴물사냥꾼들의 눈을 피하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아직 오소마츠에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나 보군. 오컬트한 존재도 뒷세계로 숨어서 마피아니 갱이니 하고 있으니까. 오소마츠에게 들킨 이상 다른 이에게도 이 모습이 노출됐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해."

"피곤하게 사네. 좀 더 자유롭게 살라고."

"그러는 오소마츠도 사실은 마피아 보스 같은 거 안 맞지 않나. 카리스마도 리더십도 있다지만."

"내 손으로 쟁취한 자리야. 그 새끼한테 납치되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이제는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그 새끼 머리를 날려버렸을 때는 통쾌했지. 안 맞으면 어때. 이것밖에 보고 배운 게 없고, 이걸로 끝날 인생이라고."

"철없는 것 같으면서도 염세적이구나, 오소마츠는."

"그러니까 이 시간이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라고. 카라우스가 정 싫다면 포기해주겠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면…"

카라우스는 말을 하려다 멈칫하곤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런 모습이라도 심장은 다를 것 없이 뛰고 있다. 오소마츠에게 불안을 전달하고 싶진 않았다. 이런 모습을 사랑해준 건 오소마츠가 유일하니까.

"그럼 슬슬 가 볼까. 너무 오래 있으면 좀 그렇지?"

"오소마츠 때문이잖나. 하아, 억지로 이 모습이 되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카라우스도 싫진 않잖아? 내가 쓰다듬으면 그르렁거리던걸?"

"어, 어서 가자고."

당황하며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 옷을 다시금 가지런히 입는 카라우스가 오소마츠는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가능하면 매일 만나고 싶어. 아니, 같이 살고 싶어. 이런 곳보다 자연에서 카라우스는 늑대 같은 모습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살고, 자신은 보스니 마피아니 그런 세계와는 상관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같이 살아가는 거야. 그래도 카라우스는 여전히 부자면 좋겠네. 자신은… 니트로 살면 어떨까. 탱자탱자 놀면서 사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오소마츠는 현실을 자각하기 위해 허벅지에 깊이 새겨진 총상의 흔적을 만지곤 한다. 뒷세계에서 도망쳐서 살아남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자신도 피를 묻히고 이 자리에 올라온 더러운 사람이고, 카라우스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니까. 자신의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가는 카라우스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삼키는 그였다.

그날 밤은 한 달 전처럼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오소마츠는 뒤척이다 잠에 들고선 꿈을 꾸었다. 정확히는 카라우스와 처음 만난 날의 회상이었다. 패밀리의 선대 보스이자 자신을 납치한 남자를 제 손으로 죽이고, 제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자들을 숙청하고, 조직을 안정화시키자 긴장이 풀린 오소마츠는 보름달이 뜬 밤 몰래 밖으로 도망을 나왔다. 옷만 평소보다 후줄근하게 입고 팔다리의 상처들만 눈에 띄지 않게 감추고 경계하면서 이동했다. 납치되기 전의 기억을 더듬어 숲의 풍경을 떠올린 뒤로 줄곧 숲에 가보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맛츠 저택 부근에 숲이 있던가. 그러고 보니 그 저택은 숲의 입구 한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호 가문이라지. 날마다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벌일 텐데 좀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자기 알 바는 아니었다. 혹시 모를 적이나 야생동물과의 조우에 대비해 외투에 감췄던 총을 꺼내기 쉬운 곳으로 옮긴 채 숲으로 들어갔다. 밤의 숲은 기억 속처럼 따뜻하고 상쾌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어 시원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맛츠 가문이 관리를 하고 있는지 숲이라고는 해도 길이 정돈되어 있어 발걸음은 편안했지만, 어디선가 짙게 풍겨오는 짐승의 냄새에 경계심을 풀 수 없었다. 천천히, 조용히 걸으며 총을 만지작거렸다. 흔적 하나라도 놓칠세라 주위를 면밀히 살폈다. 냄새가 짙어질수록 전신의 감각이 깨어나는 듯 했다. 호흡이 조금씩 흐트러지고 거칠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진정할 수 없었다. 짐승이 그르렁거리며 경계하는 소리마저 들려오자 여기서 멈추고 돌아가야 하는가 생각도 했지만, 두려움과 함께 고개를 드는 천진난만한 호기심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언제든 쏠 수 있게 총을 쥔 채, 슬쩍 보이는 짐승의 그림자를 눈으로 쫓았다. 몇 걸음 더 나아가자 가려진 짐승의 모습이 조금 드러났다. 달빛이 비치는 숲 안에서, 잔잔한 바람에 은빛 물결이 흐르듯이 흩날리는 털. 늑대인가… 하지만 두 발로 서 있는 기묘한 짐승이었다. 저런 걸 괴물이라고 하는 걸까. 저도 모르게 괴물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오소마츠보다 두 배는 덩치가 큰 괴물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며 그를 경계했다. 괴물의 금빛 눈동자는 방아쇠를 쥔 손을 향하고 있었다. 이상하지. 저 덩치의 짐승이라면, 자신 같은 건 쉽게 덮칠 수 있을 텐데. 의문스러운 괴물의 움직임에 긴장을 잠시 푼 사이, 괴물이 갑자기 뛰어들자 오소마츠는 총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죽는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 짐승은 오소마츠의 앞에 잠시 착지하더니 재빠르게 방향을 틀어 숲 깊숙한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소마츠는 총을 주운 뒤 바로 뒤쫓았지만, 괴물의 뒷모습을 끝내 찾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왔던 길을 돌아가려던 오소마츠에 눈에 어느새 높이 솟은 바위에 늑대처럼 자세를 취한 괴물이 아우우― 소리 높여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더 쫓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대로 숲 안으로 더 들어갔다간 시간이 지체돼 몰래 나온 것이 들킬 것 같았다. 괴물이 남기고 간 체취만을 폐 깊숙이 빨아들인 채 발걸음을 돌리는 오소마츠였다. ‘카라우스·맛츠’와의 만남은 그로부터 얼마 안 가서였다. 대부호 맛츠 가문의 인간이 이제 막 세대교체가 끝난 패밀리에 무슨 볼 일인지는 몰랐지만, 다짜고짜 찾아와서 보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당돌함을 높이 사 오소마츠는 친히 자신이 만나주겠다며 나섰다. 짙은 눈썹을 하고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우아하게 걷는 청년이 응접실로 들어섰다. 비싼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독한 향을 풍기는 향수를 잔뜩 뿌린 채, 스트라이프 정장에 샛노란 물방울무늬 넥타이, 백바지와 백구두 차림으로 멋을 잔뜩 부린 청년 카라우스에게선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아. 금빛 눈동자. 그리고 향수 속에 가려진 묘한 짐승의 냄새. 맛츠 저택 옆의 숲에 사는 괴물. 연결고리가 보였지만 오소마츠는 굳이 티를 내지 않았다. 카라우스는 보스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오소마츠는 흔쾌히 승낙했다. 숨기고 있는 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받은 뒤 둘은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나신 대부호께서 마피아들 소굴에는 무슨 일이신지. 그보다 카라우스라면 맛츠 가문의 차남이라고 들었는데, 형제 분쟁에 대한 상담인 걸까? 아니면 내가 얕보이는 걸까?”

“첫 만남부터 무례하기 짝이 없군요. 형제 분쟁 같은 건 애초에 일어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일어날 일은 없습니다만.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 내가 온 건, 지금부터 마티노 패밀리에 의뢰하고 싶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전에 의뢰, 아니 거래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내가 한 말에 대해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해줬으면 합니다.”

“뭐야, 정중한 거 같으면서도 은근슬쩍 무례하기도 하고. 그렇게 입 가벼운 사람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무리 봐도 입이 가벼워 보이는데.”

“말이 점점 짧아지는데? 뭐,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얘기해봐.”

“그렇다면.”

카라우스의 의뢰는 맛츠 가문을 마티노 패밀리가 보호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거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의뢰를 끝내더라도 맛츠 가문과 마티노 패밀리의 우호적인 관게를 유지하고자 맛츠 가문에서 꾸준히 자금 지원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달라고 했다. 장남인 오소왈드가 행방불명이 되고 정체 모를 위협을 받고 있는 맛츠 가의 형제들의 총의를 차남인 자신이 지고 의뢰를 받아들여줄만한 뒷골목의 조직을 모색해서 그들의 신변을 의탁하기로 한 게 오소마츠가 보스로 있는 마티노 패밀리라는 사정과 함께. 왜 굳이 우리를 골랐냐는 오소마츠의 말에는, 최근 조직에 큰 변화가 있었기에 자금이나 명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대부호인 맛츠 가문의 자금지원을 받고, 맛츠 형제들을 일정 기간 호위해주면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도 커질 수 있다. 아마 간부들에게 의견을 물어도 승낙할 터였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알고 있었다. 카라우스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덥석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로서도 나쁠 것 없는 얘기네. 그런데 말이야, 카라우스 군. 혹시 어디서 날 본 적 없어?”

“글쎄. 마피아 보스 치고는 수수한 인상에 흔하게 생겨서 어디서 봤을지도 모르지.”

“흐응.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런 의미가 아니라면?”

“내가 코가 좀 좋아서 말이야. 지독한 향수로 감춰도 짐승의 냄새는 숨길 수 없거든. 금빛 눈동자도 어디서 본 듯 하고. 너, 늑대인간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거 아냐?”

“…….”

여유 부리는 척 웃어 보이는 카라우스가 주먹을 쥐며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오소마츠는 놓치지 않았다.

“의뢰는 받아들이지. 그쪽 사정도 비밀로 해줄 테니까, 대신 호위를 명목으로라도 해서 자주 놀러와. 나 혼자만 쓰는 별채가 있거든. 거기서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나와 만나주면 좋겠어. 대놓고 말하자면, 그날 밤 첫눈에 반했거든. 그 모습에.”

“…뭐?”

“탐스러운 은빛 털. 그게 비록 달빛에 비쳐 그렇게 보인 걸지라도, 만지고 싶고 쓰다듬고 싶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카라우스는 잠시 오소마츠를 이해가 안 간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번에는 진심이 담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러도록 하지.”

카라우스는 그 다음 날 바로 오소마츠를 찾아왔다. 암막커튼이 쳐진 별채에서 카라우스는 몸소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은빛은 아니지만 회색 털을 가진 오소마츠가 만난 그 짐승임이 틀림없었다. 오소마츠와 카라우스는 어쩌면 주인과 애완동물처럼, 어쩌면 다정한 연인처럼 교감을 나누었다. 잠에서 깬 오소마츠는 손을 휘저었지만 그저 침대 시트의 감촉만이 느껴졌다. 내일도 카라우스는 찾아와 줄까. 적어도 한 침대에서 같이 누울 수 있다면. 그를 쓰다듬으며 잠들 수 있다면. 이 마음을 카라우스도 알기를 바랐다.

쨍그랑!
창문과 암막커튼을 뚫고 오소마츠의 머리 위를 스쳐 기둥에 총알이 박혔다. 두꺼운 암막커튼이 아니었다면 유리 파편이 오소마츠에게 튀어 실명됐을지도 모른다. 분명, 우연은 아니었다. 아직 패밀리 바깥으로는 자신의 영향력을 크게 넓히지 못한 오소마츠는 많은 사람을 만나질 않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잘 때는 별채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패밀리를 제외하면 거의 없고, 더군다나 2층으로 이루어진 별채에서 침대의 위치를 알 만한 인물은 간부진 아니면…

쨍그랑! 침대 밑에 숨었을 것을 예상하고 쏜 두 번째 사격이 침대 밑 바닥에 박혔다. 아마 오소마츠가 바로 피할 생각을 했다면 십중팔구 맞았을 위치지만, 오소마츠는 침대에서 머리라도 얻어맞은 듯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카라우스.”

설마. 간부진이든 카라우스든 어느 쪽도 오소마츠에게는 충격적인 인물이었다. 설마. 내가 아직 제대로 숙청을 못 한 거겠지. 한두 녀석 쯤 전 보스 충성파가 섞여있을 수 있잖아? 일단 바깥의 동태를 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오소마츠가 커튼을 걷자 바로 총알이 날아 들어온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인원은 없는 듯 했다. 이건, 저격수의 소행이려나. 한 명 뿐이라도 이 정도 솜씨의 저격수라면, 오소마츠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였다.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오소마츠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저격수가 지금 있는 위치를 파악해서 역으로 바람구멍을 내줄 계획을 세웠다. 폼으로 마피아 보스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 피를 잔뜩 묻히고 보스의 자리에 올라선 그는 몸을 낮추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해 사정거리가 긴 총을 서랍에서 꺼내 들었다. 큰 소란을 낼 생각은 없는 듯, 저격수는 한동안 총을 쏘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커튼이 걷어진 이미 깨진 창문 옆에 서서 바깥의 움직임을 그림자로 파악했다. 그림자가 살짝 이동하자, 오소마츠는 바로 총을 창문에 난 구멍 쪽에 대고 여러 발 쏴대기 시작했다. 이걸로 맞았을 리는 없나, 생각하며 재장전을 하는 그 때, 오소마츠는 금빛 눈동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달빛에 비친 그 모습은 틀림없는 카라우스였다. 카라우스는 오소마츠를 응시하더니 다시 총을 들어 총을 쐈다. 이번엔 진짜 위험했네, 죽을 뻔 했어.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방금 본 저격수의 정체를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의자를 들어 2층의 창문을 전부 내리쳐 깨뜨렸다. 몇 번의 총성과 커다란 창문이 깨지는 소리는 바로 옆의 패밀리가 지내고 있는 저택의 본채에도 들리기에 충분했고, 이내 별채 주변으로 발빠른 부하들이 모여들었다. 실제로 냄새가 여기까지 풍긴 것은 아니었지만, 카라우스의 냄새는 어느덧 사라져버린 듯 했다. 보스를 걱정하며 뛰어드는 부하들에게 경계하면서도 무사함을 알린 뒤 오늘은 본채 쪽에서 남은 잠을 자고 싶었지만, 카라우스에 대한 배신감, 오늘도 보름달 밑에서 울고 있을 카라우스의 늑대 인간 모습, 카라우스, 카라우스… 오소마츠는 더 이상 잠들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오소마츠는 맛츠 가문과의 관계를 끊고 카라우스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노린 저격수가 카라우스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패밀리 전원을 대동해 맛츠 저택으로 향하는 길은 살벌하기만 했다. 그 살벌함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던 오소마츠는, 다음 장면에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가 보스가 된 뒤 마티노 패밀리와 적대 관계로 돌아선 오카소 패밀리의 일원이 맛츠 저택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소마츠 일행이 다가가도 그들은 딱히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 마티노 패밀리의 새 보스이심? 최근 맛츠 가문의 호위를 한다는 소문이 돌던데 정말이심?”

“그런 걸 물어서 뭐하는 거지, 이야미.”

“어른을 존경하는 법이 글러먹었음. 전 보스는 겉으로나마 체면치레할 줄 아는 인간이었음. 그런 젊은 혈기로 일을 그르친 멍청한 님에게 하나 가르쳐 주겠음. 맛츠 가문은 대대로 늑대인간의 가문이심. 괴물들이나 괴물 사냥꾼이 뒷골목으로 많이 흘러 들어온 이 시대에도 그들의 싸움은 계속 되고 있는 거심. 모두 저택 안에 있는 걸 확인했으니, 완력이나 뒷골목에서의 수완이 골칫거리인 그들을 싸그리 불태우고 뛰쳐나오는 녀석은 쏴죽이면 괴물들의 소탕도 끝이심. 증거물들은 여럿 확보했으니 아마 전부 소탕한 후에 정보를 흘려보내면 우리 패밀리의 명성이 올라갈 것임. 우효효효!”

뭐지, 갑자기. 배신감이 증발해버렸다. 카라우스를 붙잡고 어째서 그런 거냐고 따질 셈이었다. 어떤 사정인지는 알고 싶었다. 뒤쪽에서 패밀리의 수군거림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뛰어들어야 할까. 구해야 할까. 그렇지만, 녀석은… 카라우스는… 오소마츠는 그저 허망하게 저택이 불타는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서는 발길을 돌렸다. 2층의 창문은 아직 수습하지 못했지만 비교적 멀쩡한 별채의 1층에서, 그는 카라우스와 보낸 한 달여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카라우스. 처음부터 날 죽이기 위해 접근했던 걸까. 내 비위를 맞추려고 괴물의 모습까지 드러내가며 내 마음을 사려 했던 걸까. 난 모르겠어. 그렇게까지 자신의 모든 걸 드러내놓고, 이러기야.

 

범인인 카라우스가 어쨌건 죽었기 때문인지, 바로 전날의 습격이 있고도 오소마츠는 별채의 호위를 물렸다. 오늘의 달은 붉은 색이다. 생각을 떨치려 읽은 신문의 1면에는 오늘 밤에 개기월식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쓰여 있었다. 월식이면 달이 안 보이는 줄 알았는데 붉은 보름달이 떠 있을 줄이야. 오소마츠는 한 달 전 그날처럼 몰래 별채를 빠져나가 맛츠 저택 옆의 숲으로 달렸다. 웅장했던 맛츠 저택은 전부 불타고도 연기가 꺼지지 않은 채였다. 오카소 패밀리는 여전히 저택을 둘러싼 채였지만 숲으로 들어가는 오소마츠를 눈치 채지는 못했다. 오소마츠는 달리고 또 달려 숲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은빛 물결이 흐르던 그 곳으로… 그 곳에는 카라우스가 없었다. 카라우스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달린 건 아니었지만, 이내 익숙한 짐승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늑대가 울던 높은 바위를 향해 나아갔다. 냄새는 점차 짙어졌다. 살짝 피 냄새도 섞여 있었다. 바위를 기어 올라간 그 곳에는 늑대인간이, 카라우스가 쓰러져 있었다. 오소마츠는 바로 카라우스를 끌어안았다.

“오소…마츠…여긴…왜…”

“네 입으로 들어야겠어. 어제는 왜 그랬는지. 우리의 첫 만남은 어디부터 계획된 건지. 그러지 않고서는 납득할 수 없어. 납득하고 싶지 않아.”

“설명하지. 설명하고 나선, 날 죽여줘. 난 너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처음부터.”

“그 처음은 어느 처음을 말하는 거야.”

“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여기서 널 만난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그럼 왜 그땐…”

“맛츠 가문이… 어떻게 대부호가 됐는지 알아? 대부호쯤 되는 가문이 위협을 받는다고… 쉽게 마피아에 손을 내밀었겠어. 내 손도, 우리 가문의 손도 이미 뒷골목에 충분히 어울리는 더러운 손이거든.”

“영향력의 문제가 아닌 거야?”

“몇 번 말했잖나…… 오컬트한 존재도 뒷세계에 숨어서 많이들 살고 있다고. 나의 경우는… 저격수 ‘쇼퍼(운전수)’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거든. 우리 형제가 늑대인간인 걸 눈치 챈 오카소 패밀리는 먼저 형님을 죽이고 나에게 오소마츠 널 암살할 것을 의뢰했어. 널 속이긴 했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 나와 동생들의 목숨이 달려 있었어. 널 죽이고 나면 오카소 패밀리가 우리를 놓아줄 거고, 먼 곳으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일이 꼬인 건 이 숲에서 널 마주치고 말았을 때부터였지. 널 죽여야만 했지만, 괴물의 모습으로 죽일 수는 없었어. 정식으로 마티노 패밀리에 접근하면서 널 속이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미 내 괴물로서의 정체를 눈치 챈 너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 때, 괴물의 모습인 나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네가 해 주었지. 그 모습 때문에 나와 형제들이 목숨을 위협받는데, 오소마츠는 그 모습을 인정해주고 좋아해주었어. 너한테 잘 보이고 싶었어. 사랑받고 싶었어. 하지만…”

카라우스는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찡그렸다. 영락없는 험악한 괴물이지만, 오소마츠는 그런 카라우스의 털을 아랑곳하지 않고 쓰다듬어주었다.

“한 달이 됐는데 아직도 멀었냐는 재촉에 난 결국 어제 암살을 결행한 거지. 그러나 눈을 마주친 그 순간, 난 오소마츠를 죽일 수 없었어. 그리고 그 대가로 나와 형제들은, 맛츠 가의 늑대인간들은 죽는 거야. 마지막으로 달이 보고 싶어서 땅을 파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이제는 사라져야 하는 거야. 미안했다, 오소마츠. 날 사랑해준 널, 난 이용하고 없애려 했어.”

아아. 그렇지. 이게, 뒷골목의 룰이야.

“작별이야, 카라우스.”

카라우스가 쥐어준 총을 오소마츠는 카라우스의 머리에 겨누었다. 이윽고 총성이 숲에 울려 퍼졌다.

 

카라우스가 죽고 난 뒤의 오소마츠의 변화라면, 먼저 커다란 개를 키우개 된 점이다. 허스키라고 하는 회색 털이 인상적인 귀여운 개다. 이제는 말끔히 고쳐진 별채에는 새로이 정원이 꾸며지고, 으리으리한 개집을 갖다놓고선 벤치에 앉아 개를 쓰다듬는 게 오소마츠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또 하나는, 정체모를 남자를 주워온 것이다. 기억을 잃었다는 청년은 검은 눈동자에 잔뜩 폼을 잡고 허세를 부리며 지독한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 오소마츠는 쉽게 그 청년을 패밀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카라우스에게 했듯이 별채로 불러 둘만의 시간을 즐기곤 했다. 보스의 남자로 패밀리 내외에서 공인받은 청년에게는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카라우스가 그리워서일거라는 모두의 추측이 있었다. 오소마츠와 카라우스와의 관계도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지금의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관계와 비슷했으리라. 별채에 암막커튼이 쳐지면, 사람들은 알아서들 별채로 다가가지 않는다. 단 둘만이 허락된 장소, 단 둘만이 허락된 시간. 카라마츠는, 카라우스는, 오소마츠에게 새 생명을 받은 그 날의 묽은 달을 떠올리며 은빛 털을 가진 늑대인간으로 탈바꿈한다. 오소마츠는 그런 카라마츠를, 카라우스를 쓰다듬으며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사랑해, 오소.”

“사랑해, 카라.”

예전 이름을 버린 그를 위해, 공공연한 연인이 돼버린 서로를 위해, 서로의 애칭을 부르며 부비는 모습은 오소마츠가 원하지 않았으면서도 원했던 미래였다.

 



쓸데없는 설정!

1. 즐거운 이탈리아어 강좌 시간

mattino [남성형 명사] 동쪽, 아침

마티노... 마츠노랑 비슷해서 고른 말이긴 한데 사실 전 보스는 토고(오소마츠 군에 나오는 하숙인인데 실은 납치범)라는 설정을 넣었습니다. 그래서 동쪽. 

occaso [남성형 명사] 서쪽, 일몰

쓰다가 적대 패밀리! 하고 찾았는데 오카소... 오카소... ㅠㅠ 운명적이네요... 이야미가 보스이자 위에 나오는 괴물사냥꾼의 일원(돈벌이를 위해)이라는 설정.

2. 몹스터 시리즈

몹스터モブスタ라는 말은 갱, 갱스터, 깡패 그런 뜻이더라고요. 헤소워 등장 당시 ☆3이 대부호, ☆4가 몹스터, 어트랙션에 저택 낮과 밤 버젼 해서 이벤트 스토리에 이어 멀티 엔딩이라는 복잡한 체제를 도전 후 그 뒤엔 안 하더군요. 대부호 버젼에서 늑대인간으로 변하고, 몹스터 버젼에서는 늑대인간으로는 안 변하는데 뒷세계 인간 너낌 뿜뿜. 몹스터 카라우스의 통칭인 쇼파ショーファー는 리무진 같은 거 운전수를 의미하는데 지옥행 특등석으로 보내주는 운전수라고 캐릭터 설명에 써 있습니다. 

3. 붉은 달과 개기월식

개기월식은  개기일식과는 달리 달이 가려지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개기월식일 때 달이 붉게 보인다고... 


하리입니다. 혼자 놀고 말하고 북치고 장구치는 사람. 자주 안 나타는 소통 어려운 사람. 오소마츠상 카라른 위주로 파는 되다 못한 연성러. 트위터🐦@2afterglow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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